(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헤어짐'은 순우리말이다. 이별, 작별, 고별 등으로 쓴다. 이 단어들은 달갑지 않다. 연인들의 상처를 떠올리든, 가족들의 손짓을 상기하든…….
단어들을 되뇌면, 영원한 작별인 '죽음'도 연상되면서 가슴이 저민다.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언제나, 누구나 겪는 인간사의 한 단면이므로 작별을 그린 그림은 참으로 많다. 그중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 한 장을 눈에 담아 마음에 가둔다.
노르웨이 여성화가 하리에트 바케르(1845-1932)는 우리에게 이름난 화가는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미술이 일취월장하던 시기의 작가다.
그녀가 그린 '작별'(1878)이다. 굳이 '여성'이라고 적시한 이유가 있다. 먼 길 떠나는 그림 주인공이 그녀이기 때문이다.
바케르는 부유한 가정환경 덕에 미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해외 곳곳을 여행하며 화가의 꿈을 키우던 중 더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독일 뮌헨으로 떠났다. 이 작품은 그 장면을 그린 것이다.
헤어질 때 쓰는 표현으로 '등졌다'는 부정적인 뉘앙스 단어가 있는데, 당찬 결심을 한 듯한 그녀 표정에서 '등지고 돌아섬'이 굽이져 있다.
아버지 표정에 숨이 막힌다. 옆모습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하다. 쓰다듬듯이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코끝이 발개진 것으로 볼 때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운함의 농도는 고개 돌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어머니보다 더 짙게 느껴진다.
이 그림 뒷이야기는 이 모든 감성을 확인한다. 1877년 바케르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운명했다는 비보를 듣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이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으로 그린 '사부곡(思父曲)'이었다.
그녀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 애정보다 그림이 더 중요했나?",라고 비난해야 마땅할까? "아버지도 네 꿈이었던 그림 공부를 중단하기 바라지 않았을 거야",라며 그녀 선택을 위로해야 할까?
바케르는 이후에 오히려 파리로 향했다. 1888년 고국으로 돌아와 87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여학생들을 모아 미술 교육에 매진하며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으며 미술에 사랑을 쏟아부었다.
같은 시기 덴마크에는 빌헬름 함메르쇠이, 안나 앙케르, 페데르 세버린 크뢰이어 등이 있었다. 이들 화가의 공통점은 '빛의 정밀한 묘사'였다. 빛이 드물었던 국토 영향 때문으로 본다.
아래는 다른 대표작, '등불 아래 공부'(1890)다. 바케르도 방 안으로 스며드는 빛을 좇으며 인물들의 고독 혹은 고립을 탐구했다.
표제작 '작별'을 다시 본다. 바케르 아버지는 헤어짐의 감정을 나름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떠올려본다. 그저 뒷짐 지고 돌아서 헛기침으로 섭섭함을 달랠 뿐이었다. 독백 같은 독촉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기차 시간 늦겠다. 어서 가거라"
바케르의 아버지도, 우리네 아버지들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딸이 찾아오지 않아도 지하에서 통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무한대니깐.
빛보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을 통해 빛이 자연의 이치라면 사랑은 사람의 이치라는 점을 수긍한다.
이름 낯선 북구의 한 화가 작품을 통해 우리 주변의 숨은 정서와 진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예술은 그 몫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예술은 때론 '감사함'이라는 온기로 인도한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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