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당시 손병희와 이완용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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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당시 손병희와 이완용의 대화

시보드 2024-05-28 09:14:02 신고

1919년 3.1 운동을 앞두고 민족대표 33인이자 천도교 지도자인 손병희는 "매국노까지 독립을 원한다면 온 민족이 다 독립을 원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라며 이완용의 집에 찾아 가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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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당신을 매국적이라고 하는데 흥국대신(興國大臣) 한번 될 생각은 없소?"

이에 이완용은 다음과 같은 말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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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2,000만 동포에게 매국적이라는 이름을 들은 지 이미 오래이오. 이제 새삼스러이 그런 운동에 가담할 수는 없소. 이번 운동이 성공해 독립이 되면, 먼 다른 동리 사람들을 기다릴 것 없이 우리 동네 이웃 사람에게 맞아 죽을 것이외다. 손 선생의 이번 운동이 성공해 내가 그렇게 맞아 죽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올시다."

이후 이완용은 일제에 거사 계획을 누설하지는 않았지만 3.1 운동이 발발한 후 일제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만세운동을 망동이라 비난하는 경고문을 세 차례나 게재하였다.




손병희


손병희는 3.1 운동 당시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독립운동을 주도한 핵심 지도자입니다. 천도교 지도자로서, 이 운동의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지도력과 결단력은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그의 활동은 역사에 깊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완용


이완용은 조선 말기의 정치가로 한국병합조약에 체결을 주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행위는 많은 이들로부터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매국노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3.1 운동 당시, 그는 일제와의 협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3.1 운동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한국의 독립운동으로,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었습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제의 억압 속에서 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고, 이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한국인들은 독립의 의지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3.1 운동 당시의 주요 인물


손병희와 이완용은 3.1 운동 당시 각기 다른 입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손병희는 독립운동을 주도한 지도자였고, 이완용은 일제와 협력한 정치가였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그 시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잘 나타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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