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5월에 몇 일 비가 쏟아지고, 얼마전부터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에어컨을 가동중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원한 것만 좋아하던 내가 냉방병이 걸렸는데, 나에게서 냉방병은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지 병원은 안가고 근처 약국에 가래 끓을 때 먹는 약을 사러 잠시 사무실에서 나왔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서현역 근처에 있다.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 노점상, 비둘기,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등으로 서현역 광장은 항상 붐비는 곳이다. 이른 점심을 먹으러 몰려나온 직장인들 목에는 주식 시장에서 종종 들어본 중견기업의 출입증을 걸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서현역을 빠져나와 근처 약국으로 향하던 도중 어떤 한 여자가 멀리서부터 나에게 전단지 종이 뭉치를 들고 다가았다. 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여자는 어눌한 말투로 '안녕하세요' 라며 전단지 한장을 내밀었지만, 나는 살짝 비켜가며 목례를 했다.
나는 주로 전단지를 받지 않고, 목례만 하는 타입이다.
무시하기는 좀 그렇고, 받자니 그 전단지는 나에게 쓰레기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내 딴에는 그게 전단지 알바를 하시는 분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여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지를 주러 발을 옮겼다. 그 순간, 내 마음속이 정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아! 바보! 내가 왜 그랬지? 받으면 덧나냐?'
주로 전단지 알바는 노인분들이 많이 하는 걸 봐왔다. 그런데 나보다도 10살 정도 어려보이는 여자가 누가봐도 이상한 차림새에, 어눌한 말투로 전단지를 돌리는데 그거 한장을 못 받아주나? 라는 생각에 내 마음은 매우 불편해졌다.
노인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나이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기에, 몸이 불편해보이는 사람이기에, 더 마음이 불편했던거다. 그것도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목례를 하는 위선까지 행하고 말았다. 적어도 저 여자분은 몸이 불편해도 자기가 스스로 돈을 벌려고 이 더위에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나는 알량한 기술 좀 있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냉방병이 걸려서 기침이나 하고 있다. 뭐가 잘났냐? 전단지를 받는데는 1초도 안 걸렸을덴테, 내 몸에 벤 관성적에 의하여 나는 저분에게도, 내 스스로에게도 나쁜 선택을 하고 말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나쁜 사람이다. 아마 이번 주말은 이렇게 계속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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