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뒤샹의 쿠데타, ‘L. H. O. O.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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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뒤샹의 쿠데타, ‘L. H. O. O. Q.’

문화매거진 2024-05-21 13:48:05 신고

▲ 뒤샹(Duchamp, Marcel/프랑스→미국/1887∼1968) ‘L. H. O. O. Q.’(복제화에 연필/61.5×49.5㎝/1930년)
▲ 뒤샹(Duchamp, Marcel/프랑스→미국/1887∼1968) ‘L. H. O. O. Q.’(복제화에 연필/61.5×49.5㎝/1930년)


[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삐딱함은 대게 마음이 기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마음이 기울고 나면 안락함은 빠르게 사라지며 머지않아 바로 설 수 없어진다. 반항기 가득한 눈빛을 시작으로 한 쪽 다리를 구부린 채 무게중심을 기울여 삐딱선을 탄다. 짝다리를 짚고 나서부터는 세상이 올바르게 보일 리 없다. 

낱낱의 마음이 기울어진 것과는 비교 불가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온 세상을 기울였다.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서구 문명과 이성적 판단의 결과가 1차 세계대전으로 나온 만큼 이를 선망할 이유는 사라졌다. 비뚤어지다 못해 뒤집히고 있는 세상 속 중심이라도 잡으려면 삐딱한 마음가짐과 더불어 언제라도 바닥에 침을 뱉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쟁에서 흘러나온 분노와 슬픔이 뒤덮인 세계의 끝에서 준비를 마친 뒤샹의 쿠데타가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것을 곱씹는다. 앞에 서면 절로 수긍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 시간을 내서 꼭 한번은 마주하고 싶은 작품을 떠올린다. 뒤샹의 생각은 오차 없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 안착한다. 

1919년 파리에 잠시 머물렀던 뒤샹은 누구나 살 수 있는 값싼 모나리자 엽서를 구매한다. 쉽게 얻은 모나리자 작품에 말릴 새도 없이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서 있는 힘껏 양기를 불어넣는다. 그 밑으로는 판독이 필요해 보이는 “L.H.O.O.Q”를 연필로 적는다. 엘, 아슈, 오, 오, 뀌로 발음되는 이 단어들은 ‘Elle a chaud au cul’ 문장으로 읽히는데, 이를 해석하면 ‘그녀는 엉덩이가 달아오르고 있다’이다.

뒤샹은 비뚠 마음들을 착착 쌓아 엽서 위 몇 개의 변주만으로 아주 쉽게 쿠데타를 자행한다. 아리따운 여인의 성별을 수염으로 가려버린 것도 모자라 빼먹지 않고 성적 조롱까지 곁들인 그는 그저 바라만 보아도 황송하던 모나리자를 단숨에 가장 천박한 곳으로 떨어뜨렸다.

뒤샹은 다다이즘과 함께하며 20세기 초 예술계에서 지켜야 할 관행이나 응당 따라야 할 것들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았다. 다다이즘은 반예술 운동으로 제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경 스위스 취리히를 시작으로 프랑스, 스위스 등의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예술에서 받들어 모신 아름다움, 도덕성, 고고하고 숭고한 것들을 거침없이 내던지며, 예술과는 무관한 것들에서 예술을 찾아낸다. 잠재적인 본능이나 욕구, 허무하고 불합리한 것, 웃기고 무절제한 감정과 같은 것들을 풀어 기울어진 세상과 얼추 지평선을 맞춰낸다.

뒤샹은 예술 활동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기진 않았지만, 다다이즘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예술가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끊임없이 전통적인 예술의 규범과 가치에 반기를 들었다. 그리지 않고 구매해 세상에 내놓은 모나리자, 아름다움을 깎아내는 낙서와 조롱 섞인 단어들을 입힘으로써 뒤샹만큼 삐딱한 모나리자로 재탄생시켰다.

삐딱함은 대게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세상에 발맞춰 삐딱해진 뒤샹 덕에 예술은 자유를 등에 업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경험들로 채워졌다. 예술계의 불문율을 침과 함께 뱉은 뒤샹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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