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제일 유명한 박성훈이 되고 싶습니다."
tvN 역대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화제작 '눈물의 여왕'에서 윤은성 역할을 맡아 '악역' 캐릭터를 다시 쓴 배우 박성훈이 이렇게 말했다.
최근 박성훈을 서울 강남 논현동 BH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났다. '눈물의 여왕' 에피소드 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박성훈은 "'눈물의 여왕'은 지독하게 욕을 먹게 해준 작품이다.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라며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DM이 왔다. 육두문자는 기본, '나랑 한 판 붙자' '백현우, 홍해인 사이에서 꺼져라" 등의 메시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성훈은 "하지만 리스크는 없다. 오히려 배우와 캐릭터를 동일하게 봐주는 반응이 재미있다"라며 "악플도 관심 아닌가. '백홍커플'을 예뻐해서 저를 미워한 거니까 괜찮다"고 쿨하게 반응했다.
그러면서 박성훈은 "드라마를 사랑해 주고, 백홍커플을 예뻐해 주고, 윤은성을 미워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해 웃음을 자아냈다.
'눈물의 여왕'은 여느 드라마와 달리 1년 가까이 촬영을 진행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박성훈은 "6개월 동안은 '눈물의 여왕'과 '오징어게임2' 촬영을 병행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라며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지 않나.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까지 거두게 됐다. 애초부터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다. 두 작품에 출연하게 돼 영광일 따름이다"라고 밝혔다.
앞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 역할을 맡아 제 옷을 입은 듯 악역 연기를 펼친 박성훈은 '눈물이 여왕'을 통해 비로소 '악역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전재준'을 능가하는 '나쁜 놈' 면모로 시종 시청자의 분노를 유발했다.
그만큼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데도 박성훈은 "얼마나 사랑하면 죽여서라도 곁에 두려고 했을까. 뒤틀렸지만 윤은성에게는 찐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주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연애는 해 봤겠나"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백현우(김수현)와 홍해인(김지원)의 해피엔딩을 위해서라면 윤은성의 죽음이 불가피하지 않았나 싶다. 안 죽었다면 감옥에 가서 죗값을 치르더라도 출소하고 나서 또 그랬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재준'으로도 잔뜩 욕을 먹었는데, '눈물의 여왕' 출연에 부담은 없었을까. 박성훈은 "우선 박지은 작가님 작품이어서 거절할 수 없었다"라며 "제 눈에 윤은성과 전재준이 같은 빌런 포지션이어도 전혀 다른 인물로 보였다. 전재준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성훈은 "전재준 때는 외면부터 날라리 티가 나게 화려한 의상으로 힘을 줬고, 비아냥거리는 톤을 많이 썼다. 반면 윤은성은 목소리를 낮추고 높낮이를 줄였다"라며 "화를 낼 때도 전재준은 대사의 강세를 뒤에 줘서 누가 봐도 화낸 것처럼 했고, 윤은성은 강세를 앞에 주면서 화를 내지만 폭발적이지 않게 했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엄청난 화제작에서 임팩트 있는 악역 연기를 펼친 바람에 실제 그의 성격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단다. 박성훈은 "실제로는 겁이 많은 쫄보다"라며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 내향적이다. 절대 악랄한 면을 갖고 있지 않다. 제가 진짜 악랄했다면 이 업계에서 퇴출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성훈은 "아시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화가 나도 참아야 할 때 많다. 그런 것을 응축시켰다가 연기할 때 폭발시킨다. 그렇게 대리만족하고 있다"라며 "욱하거나 욕하는 장면을 찍고 나오면 저희 회사 스태프들이 '오빠 얼굴이 사우나 하고 나온 사람처럼 개운해 보인다'고 하더라"라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더 글로리' 김은숙부터 '눈물의 여왕' 박지은까지, 이 시대 최고의 스타 작가가 그를 찾은 이유는 뭘까. 박성훈은 "제가 말을 잘 듣는 편이다. 가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지만 힘 있게 내세우기보다 연출자, 작가의 의견을 먼저 반영해서 그 안에 채화시키려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작가님들이 좋게 생각해 주신 게 아닐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박성훈은 지금까지 출연한 주요 작품 속 캐릭터를 시청자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박성훈'이라는 본명보다 '하나뿐인 내 편'의 장고래, '더 글로리' 전재준, '눈물의 여왕' 윤은성 등 캐릭터 이름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박성훈은 "장고래, 전재준은 아는데 여전히 제 이름은 잘 모르시더라. 밖에서 저를 보면 대부분 전재준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박재준이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제대로 캐릭터를 소화해서겠지만 박성훈은 "제 이름이 지극히 평범해서다. 포털 사이트에 동일 인물이 65명이 나오더라"라며 "예명을 쓸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 10년 전쯤인데 타투가 유행하듯 배우들이 예명 쓰는 게 붐인 시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너도나도 예명을 쓰면 멋이 없다고 느꼈다. 결국은 제일 유명한 박성훈이 되자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박성훈은 '눈물의 여왕'에서 호흡을 맞춘 김수현과 김지원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김수현은 애절한 눈빛, 사람을 점점 스며들게 하는 말투, 부드러운 보이스 등 여러 가지 매력이 있다"라며 "저보다 동생이지만 어릴 때부터 주연을 맡아 활약했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 쪽에서는 선배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연극을 할 때, 쉬는 날 무조건 공연을 보러 다녔다. 매체로 넘어오면서는 최대한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라며 "김수현은 인기가 많았고 어린 나이에도 연기를 잘 한다는 호평이 많았다. 어떤 식으로 연기하고 어떤 매력이 있는지, 참고하면서 그의 출연작을 봤다"고 전했다.
또 박성훈은 "김수현과 MBTI가 같다. 그래서 성향이 잘 맞더라. 서로 연기를 준비해 왔을 때 각자 해석이 다를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늘 잘 맞았다. 덕분에 항상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됐다"라며 "어릴 때부터 주연해서인지 리더십도 있다. 어수룩한 척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더라. 본인을 낮추면서 사람들을 웃겨주기도 한다"고 했다.
계속해서 박성훈은 "김지원은 전교 1등 스타일이다. 빈틈이 없다. 때론 교회 언니 같기도 했다. 실제로 반주 봉사도 했다더라"라며 "굉장히 정직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라고 칭찬했다.
박성훈은 외고를 졸업한 이후 "한 우물만 파라"는 아버지의 말을 깊이 새기고 자신이 좋아하게 된 '연기'에 올인했다. IMF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박성훈은 쉽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하는 집에서 7년여를 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그러면서도 이왕이면 배우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 공연장 바람잡이도 하고 티켓도 팔았다"라고 했다.
2008년 영화 '쌍화점' 단역으로 시작했지만, 박성훈은 10여 년을 연극판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옥탑방 고양이' '히스토리 보이즈' '유도소년' '모범생들' '올모스트 메인'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끝에 '연극계 아이돌'로 불리며 성장했다. '더 글로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 끝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박성훈은 '연극'을 했던 것과 관련해 "무대에서 절규하고 표출하고 발산했던 경험이 매체 연기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실제로 매체 활동만 했던 친구 중에 연기를 잘 하지만, 발산할 때 어려움을 겪는 걸 본 적이 있다"라며 "극한의 감정을 표현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오롯이 제 연기로 공간을 채우는 경험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공연계에서 제 윗세대 진선규, 박해수 형들을 통해 작품에 임하는 진실한 자세, 성실함 등을 배웠다. 형들만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닮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박성훈은 연극 '빵야'로 7년 만에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리고 올해 전 세계가 기다리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 공개를 앞두고 있다. 현재 우도환, 장동건, 혜리 등과 영화 '열대야' 촬영 중이다.
그는 2022년 공개된 '더 글로리' 이후에 '남남' '유괴의 날' '선산' '눈물의 여왕', 영화 '지옥만세'까지 2년 사이 수없이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이에 대해 "워커홀릭 성향이 강하다. 쉬면 불안하다"라며 "마땅한 취미 생활도 없다. 오로지 연기를 너무 사랑한다.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최대한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러는 와중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들어왔고, 본의 아니게 다작을 하게 됐다"고 했다.
박성훈은 앞으로도 '쉼' 없이 활동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다만 "이제 선한 역할을 맡고 싶다. 코미디를 베이스로 한 로맨스를 하고 싶다. '오 나의 귀신님'이나 '쌈 마이웨이'처럼 알콩달콩 귀엽기도 한 그런 작품에 출연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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