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송진현]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누적 관객이 1300만명을 돌파하는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긴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그해 12월12일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주축이 돼 일으킨 반란사건을 재구성했다.
전두환 반란 세력에 맞서 끝까지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른 인물들이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면서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분석이다.
그 중에서도 6분 분량의 짧은 화면으로 구현된 김오랑 소령듲 젊은 세대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현대판 ‘충’(忠) 사상의 이정표로 각인되고 있다.
영화 속 오진호 소령이 바로 김오랑 소령을 재현하고 있다.
당시 특전사 비서실장이였돈 오 소령은 반란군이 1979년 12월13일 새벽 특전사 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중무장한 채 다가왔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전사 사령관이 “위험 하니 모두들 대피하라”는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령관을 수호하려다 장렬히 전사했다. 반란군으로 중무장한 채 그를 찾아온 육사 1년 선배가 투항을 권유했음에도 오 소령은 권총을 발사하며 저항했다. 결국 친형제처럼 지내던 육사 선배 등이 발사한 6발의 권총을 맞고 그는 장렬히 전사했다.
실제 그에게 투항을 권유했던 인물은 당시 박종규 중령이었다. 나중에 청와대 경호실장까지 지낸 그는 김오랑 소령의 육사 1년 선배로 관사 이웃에 살아 자주 부부동반 모임을 하던 사이였다.
김오랑 소령은 사사로운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아래 최후의 순간을 맞은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본이 되는 사상이 바로 충과 효(孝)다. 이 중 충사상은 신라시대 화랑도부터 시작해 고려와 조선시대를 이어오며 우리민족의 정신 깊숙이 자리잡아왔다. 국가가 외침 등으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군인과 의병들의 저항심을 불러왔던 것이 바로 충 사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대 이후 물질 만능주의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지면서 효와 함께 충 사상도 사실상 실종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재조명된 김오랑 소령의 충 정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한스경제 발행인> 한스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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