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영화감독 데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쓴 대본이 필요하며 연출력도 인정받아야 한다. 감독을 꿈꾸는 영화학도들은 각종 영화제 단편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대부분 각종 영화제나 영화진흥위원회의 날카로운 심사를 거쳐 단편을 제작한다. 꾸준히 단편을 찍는 것 또한 영화 바닥에선 능력이다. ‘단편의 요정들’에선 단편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재목을 직접 만나 소개한다. 영화 ‘어쩌면 우리는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연출했으며, 영화제 모든 술자리에 참석한다는 ‘영화계의 마당발’ 형슬우 감독이 힘을 보탰다.
# 소녀와 영화, 그리고 ‘선동열 방어율’
중학생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친구들과 관계 맺기가 어려웠다. 사람에게 집착했던 성향 때문이라고 추억한다. 어린 나이에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가 있었다. 영화였다. 피터 위어의 ‘죽은 시인의 사회’,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까지 세 편이다. 인터넷에 ‘꼭 봐야 하는 영화’를 검색해서 나온 영화다. 명작이 준 울림은 컸다. 영화를 보면서 친구들과 만남에서 느꼈던 공허함이 메워졌다고 한다.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김소형 감독의 이야기다.
고향인 대전은 미디어 산업과 크게 연관이 없는 곳이다. 김 감독의 인근엔 배우도 연출자도 없었다. 어디에서도 조언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김 감독은 먼 미래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영화인이 되는 과정으로 선택한 곳이 대전보건대다.
“대전보건대학교 물리치료과를 갔어요. 1년을 다녔는데, 성적 맞춰서 간 거죠.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주위에 조언해준 사람도 없고,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도 없었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었는데, 기건 성적이 좋아야 했어요. 혼자 생각했을 때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돈을 번 다음에 나중에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돌이켜 보면 너무 어린 생각이었어요”
물리치료학과는 이과 계열이다. 온갖 생소한 근육이나 뼈 이름을 외워야 한다. 생물학과 연관된 과다. 김소형 감독은 문과다. 아무리 꿈을 위한 과정이라고 해도 성향이 너무 맞지 않았다. 성적은 매서웠다. 말로만 듣던 진정성 있는 ‘선동열 방어율’이다.
“1학기에 0.8, 2학기엔 1.2였어요. 거의 다 F를 받았죠. 학교가 나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과와 안 맞았던 거죠. 위계도 꽤 심했던 편이라 기합도 많이 받았어요. 1학기 끝나고 아버지와 면담을 했어요. ‘한 학기만 더 다녀봐’라고 하셨고, 더 다녔고, 학점 1.2가 나왔죠. 그리고선 아버지도 포기하셨어요”
# ‘노잼 대전’의 대형 제과점 출신
충청남도의 도시 대전은 ‘노잼 대전’이라 불린다. 문화를 즐길만한 요소가 많지 않아서다. 딱히 창출된 문화도 없다. 충청도의 제1도시고 많은 사람이 모여 살지만, 대전 사람들도 스로 재밌는 도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대전하면 딱 떠오르는 대형 제과점이 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워낙 대형 제과점이고, 직원들에게 복지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김소형 감독도 이곳 출신이다. 영화에도 빵집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여럿 된다.
“21살 때부터 2년 정도 일을 한 것 같아요. 돈도 안 쓰고 일만 했죠. 그렇게 돈을 모으다가 어느날 ‘이렇게 영원히 일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학교를 가야겠다는 마음이 동한거죠. 학교를 알아보다가 이창동 감독님이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계시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오아시스’도 좋아하고요. 학비도 싸고 그래서 여기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좋은 학교인지 처음엔 몰랐어요”
들어가기 쉬운 학교도 아닌데, 덜컥 붙었다. 김 감독은 운으로 붙었다고 겸손하게 밝혔다.
“1차 논술을 보는데, 저는 논술을 배워본 적이 없어요. 논술이 아니라 어떤 장소를 묘사하는 글쓰기였어요. 묘사는 비교적 상상력으로 할 수 있잖아요. 주장하는 글이 아니어서 조금 더 편하기도 하고요. 그걸로 2차까지 갔고, 면접에선 빵집 이야기가 나왔어요. 빵집에서 일했다고 하니까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빵집 얘기만 했어요. 교수님들이 흥미를 느끼면서 운 좋게 합격을 했어요. 저는 운이라고 생각해요. 면접 볼 때 제 번호 앞뒤 언니가 다 붙었거든요. 동기가 45명인데, 연달아 앉아있던 3명이 동시에 붙은 거죠”
# “나만의 색은 뭐지?”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김 감독은 부푼 꿈을 안고 영화과에 들어갔다. 기대감이 컸지만 이내 어려움을 느꼈다. 전국에 날고기는 끼쟁이들이 모인 영화과에서 점점 위축됐다. 스스로 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부했는데, 진정한 씨네필들이 돌이 발에 치이듯 넘쳤다. 자신의 세계가 좁다는 걸 느꼈다.
“영화과에 붙은 친구들은 아마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애들이었을 거예요. 어수선하기도 하고 끼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당시에도 색깔이 없었어요. 학교 가서 보니까 제가 모르는 감독도 정말 많더라고요. 어떤 친구가 이 영화 감독을 좋아한다고 해서 막상 보면 저도 좋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작아졌어요”
2년 넘게 돈을 모아 들어간 학교였는데, 다시 2학년이 되자마자 휴학을 한다. 친구로부터 들은 한 마디 때문이다. “너는 진짜 감이없다”
“‘이야기 구성’이라는 수업이 있었어요. ‘인물 다큐’라는 1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야 해요. 세 명이 한 조를 이뤄서 했어요. 오래된 커플에 대한 다큐멘터리였어요. 영화학교 들어와서 처음 찍는 단편이에요. 다들 그 수업에 집중을 하죠. 당시 편집을 하는데 같은 조였던 남자애가 제가 편집한 걸 보더니 ‘너는 진짜 감이 없다. 방송 영상과로 가는 게 어때?’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상처를 받았어요. 왜냐면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았거든요”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다시 제과점으로 향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되짚어보기로 한다. 반성의 시간이자, 자아 성찰의 시간이다. 주위에서 나에 대해 평가하는 이 공간에서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누구와 싸우거나 한 건 아니에요. ‘내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면?’이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던 게 컸어요. 책도 많이 봤어요. 당시 연애를 했고, 연기에 대한 꿈을 가진 거였어요. 어렸을 때 성당에서 연극을 했었는데, 그 경험이 강렬했어요. 원래는 2년을 휴학해서 여행까지 가려고 했죠. 그러다 동기 중 한 명이 작품을 찍는데 저보고 배우로 출연해달라고 해서, 휴학을 멈추고 학교로 돌아왔죠”
# ‘미친 연기력’을 가진 연기파 감독
김소형 감독은 영화계에서 연기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웬만한 배우보다 더 사실적이다. 생동감이 넘친다. 형슬우 감독의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에서 정은채의 친구로 잠깐 나오는데, 배우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현실감을 준다. 실제로 김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선화의 근황’, ‘사랑과 평화’, ‘우리의 낮과 밤’에서 직접 연기를 한다. ‘우리의 낮과 밤’에서의 연기는 상당한 수준이다. 몰입을 높인다. 과연 미친 연기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제가 뭐든 쉽게 질리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아직도 하고 있어요.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영화와 제가 경험한 영화는 다른 것 같아요. 연출을 할 때는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해요. 뭔가 연출을 할 때마다 ‘이건 가짜야’라는 걸 각인시키는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몰입 밖에 있는 역할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세밀하게 조종하면 할수록 밖에 있는 느낌이에요. 이성적이라는 뜻이죠”
반대로 연기는 안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연기는 인물에 더 집중하게 돼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접근법이 연출과 매우 달라요. 둘 다 할 줄 아는 건 결과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제 영화에 제가 나온 이유가 있어요. 영화 만드는 게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다들 엄청 치열하잖아요. 그렇게 치열한 남의 영화에 제가 배우로 나와서 연기를 못하면 망치는 거잖아요. 얼마나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제 영화는 제가 연기를 못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하잖아요. 욕은 안 먹잖아요. 제가 선택했고, 제가 책임지는 거니까. 그래서 연기했어요. 연기를 욕 안 먹고 하고 싶어서. 하하”
# 영화라는 친구
오랫동안 영화를 보고 만들고, 대화하고,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덧 영화가 친구가 됐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배경도 친구의 빈자리에서 출발한다. 김소형 감독에게 영화는 이제 인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저한테 영화는 친구죠. 시간을 때우기도 하고, 어떤 감정을 해소하게 해주기도 하고요. 영화는 많은 사람과 한 번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힘이 있잖아요.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떤 글을 바탕으로 카메라 안에서 움직이는 것에 굉장한 매력을 느껴요. 어떤 글을 배우가 움직임을 갖고 목소리를 내고 표정을 지으며 연기하면, 다른 차원의 것이 열려요. 또 하나는 저는 제게 관심이 많아요. 갑자기 제 안에서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때론 이상한 감정이 들기도 하죠. 인간은 평생 자신을 알기 위해 살아간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점이 있어요. 제게 관심이 많은데, 제가 모르는 감정이나 무의식을 해소해 주는 게 영화 같기도 해요. 그래서 더 좋은가 봐요”
이름: 김소형
출생 : 1992년생
작품: ‘선화의 근황’, ‘사랑과 평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우리의 낮과 밤’
별명: 기억나지 않음
이력: 씬원아카데미 2기 수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0세기 소녀’ 각색, 장편 옴니버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각본/감독/주연
특이점: 엄청난 끼를 가졌지만, 의외로 샤이함
사진=허정민 기자
함상범 기자 kc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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