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지난날의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연기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죠."
힘차게 날아오르던 김선호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추락했다. 이른바 '잘 나가던 배우'가 '사생활 논란'에 휩싸이면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김선호는 출연키로 했던 여러 작품에서 하차했다. 당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혔을 테고, 자신으로 인해 작품 이미지까지 안 좋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한 작품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작사와 감독도 그를 끝까지 원했다. 영화 '귀공자'였다.
'귀공자'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 외에 대안이 없었다"며 그를 고집한 이유를 전했다. 영화를 보면 왜 김선호여야 했는지 이해가 간다. '귀공자'는 김선호여서 가능하고, 김선호여서 매력적인 영화다.
김선호는 "대안이 없다는 말은 저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라며 "배우로서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논란이 터지면서) 이미 한 차례 영화가 미뤄졌던 상황이었다. 영화가 더 미뤄지면 금전적인 손해가 컸을 것이다. 저를 선택해준 감사한 분들에게 더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라고 떠올렸다.
앞서 김선호는 박훈정 감독의 출연 제안이 왔을 때, 시나리오도 보기 전에 망설임 없이 'OK' 했다. 박 감독에 대한 팬심 때문이었다. 김선호는 '신세계', '마녀' 등에서 보여준 박 감독만의 독보적인 액션과 독창적인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 때 논란이 발생했고, '귀공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위기가 닥친 것이었다.
김선호는 "송구스러운 마음이 컸다. (논란 이후) 지난날의 저를 더 많이 돌아볼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연기이기 때문에 그걸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고 했다.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다.
김선호의 복귀작이자 스크린 데뷔작이다. 타이틀롤 귀공자를 연기한 김선호는 특유의 위트 넘치는 연기부터 와이어, 카체이싱, 총기 액션까지 하드캐리하며 118분 내내 매력 포텐을 터트린다.
김선호는 "커다란 스크린에 제가 나와서 연기 하는 자체가 신기하다"라며 "성적보다 제가 어떤 배우로 평가될지, '귀공자'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지 궁금하다. '김선호가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 '가능성이 있네' '누아르 장르도 잘 어울린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김선호가 연기한 귀공자는 극 중 자신이 추격하는 마르코(강태주)를 향해 "친구"라며 다가선다. 그러나 과연 진정한 친구인지 적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 해맑은 눈동자 이면에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맑은 눈의 광인'이다.
귀공자는 마치 '조커'의 히스 레저처럼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도 때론 '캐리비안의 해적' 조니 뎁처럼 능청스러움의 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김선호의 탁월한 연기를 통해 '완벽'에 가깝게 그려졌다.
김선호는 예고편 등에서 공개된 콜라를 마시는 장면과 관련해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는 "대본에 '참 맛있게도 어린애처럼 먹는다'라고 쓰여 있었다. 귀공자의 어린애 같으면서도 잔인한 면을 강조하는 장면이다. 표현은 배우의 몫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선호는 죽을 힘을 다해 타깃을 쫓을 때도 웃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울 때도 웃는 귀공자를 연기한 것에 대해 "시종 돌아이 기질이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래서 웃는 버전도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너무 웃으면 과한 것 같고 덜 웃으면 캐릭터가 안 살고, 조율이 쉽지 않았다. 계속 웃었더니 어느새 얼굴 근육에 경련이 오더라"라고 회상했다.
김선호는 최근 열린 시사회에서 완성본을 봤다. 그는 "사실 첫 영화라 떨려서 제대로 못 봤다. 제 연기에 단점만 그렇게 보이더라"라며 "그래도 감독님이 편집을 멋있게 해주셔서 잘 나온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훈정 감독은 '귀공자' 2편과 관련해 "김선호와 싸우지 않는다면 찍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선호는 "농담으로 하신 이야기 같다. 영화가 잘 돼서 감독님이 불러주신다면 당연히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과연 싸울까 싶다. 두 사람은 '위기'를 극복한 만큼 돈독해졌다. 박훈정 감독은 '귀공자'에 이어 차기작인 '폭군'까지 김선호와 함께했다. 김선호는 "좋은 연출자를 넘어 이제는 좋은 형이 됐다. 어떨 땐 친구 같다. 사소한 이야기도 자주 하고 맛집 탐방도 함께한다"며 웃었다.
"제가 이병헌, 송강호, 최민식 선배님을 보면서 그랬듯이, 훗날 저 또한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습니다."
김선호는 2009년 연극 '뉴 보잉보잉'으로 데뷔해 지난 14년 동안 무대와 드라마에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7년 KBS2 드라마 '김과장'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 같은 해 MBC 드라마 '투깝스'에서 사기꾼 공수창 역을 맡아 주연 배우인 조정석만큼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김선호는 그 해 '투깝스'로 신인상과 우수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2'부터 tvN '갯마을 차차차'까지, 연기력과 시청률을 다 잡으면서 주연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김선호는 TV 매체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무대에서부터 탄탄히 쌓아 올린 노력이 빛을 본 것.
그런데도 김선호는 "저는 느리고 부족한 사람이다. 연기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저처럼 느린 사람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병헌, 송강호, 최민식 등 선배들이 보여준 좋은 레퍼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그분 들을 보면서 빌드업 하고 있다"라며 "저만이 가진 장점을 찾고, 저 또한 연기력이 좋아져서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김선호는 최근, 1년 동안의 시간을 담은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는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한결같이 응원해 준 팬들과 주변 분들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배우는 빛이 나지 않는다. 저는 작은 사람인데 저를 지지해주는 분들이 크게 만들어 준 것 같다"라며 "제게 많은 것을 주셔서 감사하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가는 게 제 목표다.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리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귀공자'는 오는 21일 개봉한다. 김선호는 '폭군' 촬영을 마친 이후 김지훈 감독 드라마 '망내인'을 준비 중이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km@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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