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의 요정들] 김호 감독 ② “목덜미를 잡아챈 이야기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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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요정들] 김호 감독 ② “목덜미를 잡아챈 이야기 넷”

한류타임스 2023-06-01 16:49: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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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화감독 데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쓴 대본이 필요하며 연출력도 인정받아야 한다. 감독을 꿈꾸는 영화학도들은 각종 영화제 단편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대부분 각종 영화제나 영화진흥위원회의 날카로운 심사를 거쳐 단편을 제작한다. 꾸준히 단편을 찍는 것 또한 영화 바닥에선 능력이다. ‘단편의 요정들’에선 단편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재목을 직접 만나 소개한다. 영화 ‘어쩌면 우리는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연출했으며, 영화제 모든 술자리에 참석한다는 ‘영화계의 마당발’ 형슬우 감독이 힘을 보탰다.

#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는 어디서 출발하는가?
김호 감독이 연출한 ‘오발탄’과 ‘유라’, ‘자리’, ‘미아’는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학교 폭력, 여성인권, 주거문제, 가족의 소통이 주요 소재였다. 뉴스의 내용을 이야기로 가져온다. 아무리 단편이라도 시나리오를 끝까지 마무리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 이야기를 꼭 남기고 싶다는 강력한 동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이야기로 부와 명예를 얻겠다거나, 영화제를 가겠다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다. 물론 속물적인 욕망이 없지는 않으나 장르로 접근하려 한다. 저는 대부분 뉴스나 기사, 커뮤니티에 나오는 썰들에서 출발한다. 모순적인 이야기나, 흑백논리로 판단하면 안 되는 문제가 흑백논리로 정리돼 버릴 때 원동력이 생기는 것 같다. 사회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제 목덜미를 잡아채는 모순이 있다. 그럴 때 깊게 파고든다. 스스로 끝까지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 오발탄
한 고등학생의 가방에는 폭탄이 설치돼 있다.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동창이 있는 학원 교실에 터뜨릴 계획이다. 뉴스에 나올 것까지 모두 대비했다. 동창이 교실에 있는 상황에서 폭탄을 누르는데, 불발이다. 그 사이 학원 계단에서 괴롭히던 동창과 마주한다. 둘은 대치를 이어간다. 동창은 주인공이 가진 가방을 뺏으려고 하고, 주인공은 이를 막으려 한다. 두 청춘의 불안한 싸움은 차가 다니는 신호등에서 벌어진다. 그 불안을 가득 담은 채로 크레딧이 내려간다.

“뉴스나 매스컴에서는 1진과 1진이 괴롭히는 아이로 표현이 돼 있었다. 이건 진실이 아니다. 1진이 있고, 2진이 있고 그 밑으로도 계급이 촘촘하게 있다. 방관자도 있다. 학교라는 거대한 사회 안에 강자와 약자가 구분돼 있고, 약자 내에서도 포식자와 피식자가 있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싸움이 아니라 피식자들간의 생존 다툼이면 흥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중학생이 부탄가스로 학교 복도를 무너뜨린 일이 있었다. IS로 넘어간 김군도 SNS만으로 소통을 했다”


영화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불안이라는 정서만 전달하면서 끝난다. 아무리 단편이라지만 끝이 크게 열려 있다. 용감한 엔딩으로 평가된다.

“감정적으로 가장 하이라이트 때 끝내고 싶었다. 주제의식과도 연결돼 있다. 폭탄이 터졌느냐 안 터졌느냐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두 피식자의 나머지 삶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는 건 결국 비극을 일으킨다. 결말에서 비극이 멈추지 않는다는 표현이 됐었으면 했다”


# ‘유라’
소녀 가장인 유라는 생리대가 항상 부족하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 타인에게 생리대를 사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다. 전단지 알바를 하는 유라는 생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나라에서 보호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남자 감독의 시선으로 여성의 생리를 다뤘다. 역시 파격적인 작품 중 하나다.

“깔창 생리대란 말이 유행처럼 퍼진 시기가 있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생리대가 부족했던 여학생이 결국엔 깔창으로 그것을 대체했다는 뉴스가 나온 뒤다. 기사도 많이 나왔다. 충격을 크게 받았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2015년만 해도 생리대는 사치품으로 분류돼 있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사치품으로 분류된 사례가 많았다. 사치품은 부가세를 많이 낸다. 돈 없는 학생이 사기란 쉽지 않은 품목이다. 카드값이 돌아오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매달 겪는 생리도 매우 큰 스트레스일 것 같았다. 아무도 책임져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조차도 너무 모르는 채 후다다닥 초고를 써서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의 생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포와 배짱이 필요하다.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김호 감독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시나리오를 읽은 여성 감독들 사이에서 여성의 대상화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 피드백을 듣고 한 여자 사람 친구에게 ‘어렵겠지?’라고 자문을 구했었다. 포기단계에 있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남자들이 그런 식으로 외면하다 보니까 이런 사태까지 온 거 아니냐’고 일침을 놓았다. 정신이 번쩍 깼다. 내가 모르는 범위라고 외면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100을 다 담지 못하더라도, 50만 담아내면 목표 달성이라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꽤 명품 단편으로 평가받는 ‘유라’지만 일각에서는 비판이 많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생리대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게 요지다. 김 감독은 인정하지 않았다.

“‘유라’가 가장 힘들었다. 혹여나 내가 실수했을 때 돌아올 후폭풍이 컸기 때문이다. 영화 창작이라는 게 내가 서보지 못한 곳에 나를 세우는 작업이라고 했다. 힘들었음에도 ‘유라’를 찍도록 버티게 한 문장이다. 생리대가 없는 사람이 없다는 비판은 편협한 비판으로 해석한다. 모든 소녀가 생리대가 있다는 근거는 없다. 학생들하고 얘기 해보면 사각지대는 있다. 학교에서 관리하는 소녀 가장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부모가 존재하는 데도 이 부모로부터 완전히 방치된 아이들도 있다. 이런 친구들은 생리대가 없을 수 있다. 시야 밖에 존재하는 친구들이다. 관점에 따라 보이는 게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 ‘자리’
앞선 두 영화가 매우 강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작품이라면 ‘자리’는 꽤 라이트하다. 친구 집에 얹혀사는 주인공이 부동산을 알아보는 이야기다. 12분 러닝타임의 이 영화는 프리프로덕션을 제외하고 약 이틀만에 찍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찍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서울에서 잘 곳 없는 주인공이 방황하다 꿈을 꾸는 이야기다.

“누구나 갑자기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저의 경제적 상황과 위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다. 누구나 넓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집은 이 정도라는 걸 명확히 아는 순간이다. 저 역시 감정 소모를 여러 번했다. 분노에 가까웠다. 뭐에 분노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부동산을 통해 이 집 저 집을 다니다 인상적인  공간을 봤다. 샤워하면서 이리 저리 조합하다가 ‘이거 이야기 되겠는데?’라고 싶어서 조립한 케이스다”

비록 인물도 많이 나오지 않고, 공간도 많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13분의 분량을 어떻게 이틀 만에 찍을 수 있었던 걸까.

“할 얘기가 분명해서 가능했다. 다행히 경제적으로도 잘 찍을 수 있었다. 당시 한국영화 아카데미에 다닐 때였다. 직접적으로 언급하긴 어렵지만,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찍었어야 했다. 주인공이 걸어 올라오는 배경 뒤로 고층 아파트가 그려지는 장면이 나름 이 영화를 관통하는 장면이다. 은근히 팬층이 많은 단편이다”


# ‘미아’
‘미아’는 이혼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큰 형은 옛 엄마를 그리워하고, 동생은 새로운 화경에서 적응하길 원한다. 아버지의 통제와 새엄마의 은밀한 압박이 불편했던 큰 형은 동생을 데리고 친엄마에게 간다. 그나마 안식처이길 바랐던 친엄마는 느닷없이 감정이 격해진다. 오랫동안 쌓인 홧병이 아이들을 향하고, 한탄하기 시작한다. 꽤 감정적이고 공격적이다. 동생은 밥을 먹다 체한다. 이들이 있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가족 구성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당시 아동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기도 했다.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사실 이들도 피해자인데 책임을 이들에게 떠넘기는 형태였다. 아이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부모가 맹목적인 보호를 할 시기에 정서적인 방어막이 돼야 하는데 개인의 삶을 선택하면서, 아이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앉는 형국이다. 반대로 이혼하고 더 아이를 잘 챙기는 부모도 있긴 하다. 어찌됐든 그 안에 놓인 아이들의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내면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보고 싶어서 풀샷을 많이 썼다. 연극처럼 그리려 했다”


김호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품임에도 의외로 교수진으로부터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 비판으로 인해 김 감독도 꽤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도 열심히 만든 작품인데, 혹평에 혹평을 받았다. 대체로 너무 가볍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콘티를 짤 때도 다른 버전으로 편집이 잘 되지 않게 콘티를 짰다. 주위에선 왜 촬영을 이렇게 했냐고 비판도 많았다. 정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낸 감독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고, 저녁을 함께 먹었다. 당시 그분께서 ‘감독이 하는 일이 카메라 하나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정하고 찍고 편집하는 것인데, 약속을 지켰다고 비판받는 건 무슨 일이냐’고 하셨다. 상당히 위로가 된 말이다. 영화 감독은 ‘약속을 조율하고 정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영화도 어떤 규칙 안에서 규칙을 이용해야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 규칙을 파괴하면 사람들이 떠나간다. 규칙을 가지고 놀 정도로 영화 시스템을 더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본기를 따지는 것 같다”

# 열린 결말
네 편의 영화 모두 공통점이 열린 결말이다. 뭐 하나 시원하게 매듭을 짓지 않는다. 무책임일수도 있고 솔직함일 수도 있다. 

“열린 결말은 연출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제시를 해주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질문으로 같이 답을 찾는 게 맞는지는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그때 그때 다루는 소재나 인물도 영향을 끼칠 거고, 제 역량의 문제가 될 때도 있을 것 같다. 답을 내리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문제다”


이름 : 김호
출생 : 1991년생
작품 : ‘오발탄’(데뷔) ‘유라’ ‘자리’ ‘미아’
별명 : ‘괴물’ 덕후
이력 : 안양예술고 연극영화과 / 서울예술대 영화과 /성균관대 대학원 영상학과(중퇴)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연출전공 (35기) / 배성재의 ‘텐’ 4회 출연 / 영화 ‘외계+인’ 연출팀 
특이점: 봉준호 감독과 인연이 깊다. 봉 감독이 ‘영화아카데미 추천서’를 써줬다. 
           고집불통 문제아 기질이 있지만, 말을 정말 잘한다.

사진=허정민 기자, 김호 감독 제공

함상범 기자 kc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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