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승헌은 대한민국 대표 스타다. 1995년 모델로 데뷔해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 ‘그대 그리고 나’, 영화 ‘카라’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으며 ‘가을동화’, ‘여름향기’, ‘에덴의 동쪽’, ‘사임당, 빛의 일기’, ‘블랙’, ‘보이스4’, 그리고 하반기 방송할 ‘플레이어2’까지 28년째 톱스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데뷔 초반 따뜻하고 묵직한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던 송승헌은 영화 ‘인간중독’, ‘미쓰 와이프’을 시작으로 ‘제3의 사랑’, ‘대장 김창수’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연기의 폭을 넓혔다.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 역시 송승헌의 도전이 담긴 작품이다.
‘택배기사’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에서 전설의 택배기사 ‘5-8’(김우빈 분)과 난민 ‘사월’(강유석 분)이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다.
송승헌은 극중 천명그룹 대표 ‘류석’을 연기한다. 천명그룹은 사막화된 세계를 자신만의 질서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들을 지배한다. ‘류석’은 계급화된 사회에서 산소를 무기로 난민을 학살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야욕의 소유자다.
한류타임스는 지난 17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송승헌과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 공개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절대 악으로 표현되는 ‘류석’의 캐릭터를 연기한 송승헌, 그리고 28년째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괜찮은 사람, 송승헌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풀어냈다.
‘택배기사’라는 작품과 ‘류석’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 했을까?
지구 멸망 직전 인간들 중 1%만 살아남았고 현재 지하벙커에서 살고 있다. 류석의 아버지가 만든 세상이고, 류석은 이 세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노아의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를 데려갈 수 없어 난민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류석은 극중 빌런이다.
류석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래도 류석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돌연변이들을 실험실에 데려온다. 겉으로 보기엔 나쁜놈 같지만 들여다보면 연민도 든다. 희생을 당하는 난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쁜놈이다.
류석이 투석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무슨 병이라고 따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설정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죽는 걸 모른다. 그래서 더 안쓰러웠던 것 같다.
류석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이전 상황을 설명하자면 류석의 아버지와 딱딱 할배(김의성 분)의 친구 사이가 주된 내용이었을 것이다. 현재 시점은 지구에 운석이 충돌한 후 상황이고, 과거에 두 사람이 행성 충돌을 막으려고 했지만 막지 못했고 이후 류석이 태어난 거다. 이런 설정이 조금 더 설명됐으면 좋았겠지만, 너무 설명적일 수 있고 시간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모두 다 설명하지 않았다. 감독님과 저도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다음 기회가 있다면 과거 이야기도 해보자’고 했다.
‘택배기사’를 찍으면서 달라진 점은?
‘산소가 없는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봤다. 사실 이런 걱정을 늘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걱정은 하지만 우리 세대에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면서 환경운동까지는 아니지만 자연 다큐도 찾아보고, 환경 문제도 생각하게 됐다.
코로나 시기에 촬영했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촬영하는데 실제로도 팬데믹 상황이었다. 한창 코로나가 심할 때여서 현장에 갈 때마다 PCR 검사를 했다. 그래도 3년 동안 마스크를 쓰다가 지금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인터뷰도 비대면은 오랜만이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걸 못하다가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소중한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김우빈과 호흡을 맞춘 소감은?
감독님에게 우빈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직접 만나보니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따뜻하다. 저는 그 나이 때 못 했던 것 같은데 우빈이는 배려심이 정말 많다. ‘쟤가 왜 저러지?’ 할 정도였다.(웃음) 후배지만 배울 점이 많다. 괜찮은 사람이다.
데뷔한지 28년이 됐다.
데뷔한 게 엊그제 같다. 예전에는 대부분 누나‧형이었는데 이제 친구나 동생들이다. 주변을 보면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아졌나. 세월 빠르다’ 싶다. 아직 만족하면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저를 계속 찾아주시고 제 작품 봐주시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하다. 사실 어릴 때엔 이런 생각을 못 했다.
예전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기를 했을까?
20~30대 때는 그냥 일이었다. 솔직히 어릴 적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던 게 아니었다. 운이 좋아서 좋은 분을 만나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렇게 직업이 되고 먹고 사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20~30대 때는 현장이 즐겁지 않았다.
언제 생각이 바뀌었을까?
생각이 바뀐 건 10년 정도 됐다. 영화 ‘인간중독’을 하면서 편해진 것 같다. 제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나 다른 사람이 원하는 송승헌에 대한 색깔을 내려놓을 수 있는 영화였다. 항상 정형화돼 있는 착하고 멋진 역할만 하고 싶었는데, 그런 걸 했을 때 평가가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쓰와이프’ 때도 빈틈 있는 남편 역을 하면서 멋져 보이지 않는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더 좋아해주시는 걸 보면서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엔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고 싶어졌다. ‘택배기사’도 마찬가지다. 빌런이고 장르물이라 해보고 싶었다. 거짓말 같지만 요즘이 더 재밌다. 20대 때 더 재밌게 연기를 했으면 더 좋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성격도 솔직해졌다.
예전엔 좋은 얘기만 했다. FM적으로 ‘작품과 사랑을 하죠’ 이런 식이었다.(웃음) 기사가 어떻게 나갈지 걱정도 됐다. 요새는 세상이 변했다. 예전엔 악역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조의석 감독과는 영화 ‘일단 뛰어’ 이후 20년 만에 작품을 함께 했다.
저도 당시 신인이었지만 감독님에게도 데뷔작이었다. 여유가 없었고 부담감도 있어서 촬영할 때는 친하게 못 지냈다. 후반 작업을 하면서 친해졌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독님도 소위 잘 나가는 감독이 됐다. 사적으로는 자주 봤는데 감독과 배우로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 촬영 첫날 굉장히 묘했다. 마지막 촬영 날에도 ‘수고했다’고 하는데 티는 안 냈지만 찡했다. ‘택배기사’를 찍으면서 즐거웠다. 앞으로도 더 많은 얘기를 해보자고 말했다.
조의석 감독과 또 작품을 같이 할 예정일까?
그럼 좋을 것 같다. 감독님 차기작이 있어서 어떤 캐릭터가 있는지 정도 들었다. 구체화되면 더 이야기하기로 했다.
조의석 감독과 평소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저보다 더 재미없는 친구다.(웃음) 말수도 없고, 굉장히 내성적이다. 조용히 있다가 술을 마신다. 소지섭도 굉장히 내성적인 친구인데 저와 오랫동안 보는 걸 보면 신기하다. 조의석 감독, 소지섭 모두 속이 굉장히 깊고 인간적인 친구들이라 좋다. 저는 보통 중고등학교 때 친구와 잘 만나는데 사회에서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돼 좋다. 사회 친구지만 소중하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인연을 이어나가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성향 자체가 편하고 익숙한 걸 좋아한다. 같이 일하는 스태프나 매니저도 15년 이상 된 친구들이다. 옛날 친구들은 저를 배우로 보는 게 아니라 어릴적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 대해주는데 그게 편하고 좋다.
20년 된 팬의 결혼식에 최근 참석했다.
팬 결혼식에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교복 입고 오던 친구였는데, 벌써 시집을 가는 걸 보면서 뿌듯했다. 어릴 때부터 저를 좋아해주셨던 분인데 ‘지금까지 활동해주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하신다.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고맙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0~30대 때 저는 하기 싫을 때도 있었는데 그분은 그때 제 모습을 좋아해주신 거다. 미안하기도 하고, ‘앞으로 한 작품 한 작품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캐릭터는 20대만 할 수 있고, 나이가 들어야만 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 제가 지금 캠퍼스 대학생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말이 안 된다. 제 나이에 맞게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그렇다고 멜로의 감정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사랑 이야기는 계속 하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안 해봤던 캐릭터를 시도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훌륭한 연기자나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말보다 ‘그놈 괜찮은 놈이야’란 말을 듣고 싶다. 이런 얘기는 듣기 쉽지 않다.
사진=넷플릭스
이주희 기자 ljh01@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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