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닷속에 머물던 ‘인어공주’가 3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바다 위로 올라왔다.
디즈니의 새로운 라이브 액션 필름 ‘인어공주’는 1989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화 프로젝트다. ‘인어공주’의 ‘에리얼’은 디즈니가 품어온 수많은 딸 중 가장 고이 아꼈던 공주다. 월트 디즈니 사망 후 정체기에 빠졌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인어공주’의 시작으로 새로운 페이즈를 맞이했다. 이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킹’까지, 디즈니 르네상스의 출발선엔 ‘인어공주’가 서 있었다.
하여 이번 실사화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였을 디즈니다. 허나 시작부터 거센 폭풍에 휘말렸다. ‘에리얼’ 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며 블랙 워싱 논란이 일었다. 특히 추억의 되새김질을 원했던 원작 팬들의 반발이 심했다. “나의 에리얼은 이렇지 않아”라며 ‘#NotMyAriel’ 태그 운동을 벌였다. 피부색을 넘어 외모 비하까지 이어졌다. 디즈니 프린세스 중 비주얼 톱 티어를 차지했던 에리얼의 후광이다.
하지만 디즈니의 의지는 굳건했다. 1989년에도 그랬다. 디즈니 프린세스 중 최초의 빨간 머리 공주님이었던 에리얼이다. 그간의 공주님으로 대변됐던 순종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당차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담보로 원하는 것을 거머쥐고자 했던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30년이 흐르자 1989년의 에리얼까지 남성 중심 시선의 보수적인 캐릭터라 비판받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디즈니는 과감하게 칼을 빼들었다.
이번 ‘인어공주’는 확실하게 현재 시대의 흐름을 짚고 있다. 에리얼은 보다 진취적인 캐릭터가 됐다. 왕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 10대의 논리를 담았다. 이는 ‘에릭’(조나 하우어-킹 분)에게도 적용된다. 부모의 보살핌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 영화 ‘인어공주’가 품고 있는 새로운 메시지다.
이는 ‘알라딘’에서 성공한 전략이다. 라이브 액션으로 새로이 태어난 ‘알라딘’ 역시 변화한 시대의 메시지를 오리지널 넘버 ‘Speechless’에 담겼다. 과거 ‘알라딘’에게 구출됐던 ‘재스민’은 더 이상 수동적인 공주님이 아니었다. 술탄이 되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악습에 자기 목소리를 내질렀다. 디즈니의 변신은 옳았고, ‘Speechless’는 차트를 점령했다. ‘A Whole New World’에서 ‘알라딘’의 시그니처 넘버 자리를 넘겨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인어공주’가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디즈니 제2의 전성기를 열어젖혔던 원작의 위상이 대단한 탓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보다 인지도에서 우위를 점유하고 있는 디즈니의 ‘인어공주’다. 말 그대로 명작이다. 따라잡기도 힘든 일인데, 캐스팅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던 원작 팬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울 일이다. “잘 해봐야 본전”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유다.
당장 실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연기보다 무게가 떨어진다.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0로 설정한 이상, 그 매력을 새로이 채워야 했다. 하지만 연기도, 노래도 부족하다. 할리 베일리의 오프닝 넘버 ‘Part of your world’는 전율을 선사한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대단치 못하다. 무엇보다 ‘인어공주’의 시그니처 넘버는 세바스찬의 ‘Under the sea’이건만, 새로 부른 노래보다 예전 노래를 다시 찾아 듣고 싶어진다.
‘라이언킹’에서 제기됐던 불편한 골짜기 문제도 다시 발현됐다. 바닷가재의 모습을 하고 대단한 입담을 과시했던 ‘세바스찬’은 달랑 게로 치환됐다. 실제 같은 생명체에 눈을 그려 넣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노란 몸통에 파란 줄무늬의 물고기 ‘플라운더’는 해포리고기가 됐다. 진짜 같은 현실의 모습을 얻었지만 귀여움이 증발했다. 마치 수산시장에서 봤을 법한 비주얼, 캐릭터가 아닌 생선의 모양새다.
실제처럼 구현된 생명체들이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런 불쾌감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현상이라 하니, 디즈니의 뛰어난 CG가 남긴 과제인 셈이다. 차라리 그 기술을 바닷속 풍경에 쏟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꼭 현실적인 그래픽이 모범답안이 아니라는 것, 의인화에 대해 누구보다 뛰어났던 그들이기에 더 아쉬운 대목이다.
허나 이번 ‘인어공주’에 대한 잔소리엔 ‘원작과 비교해’라는 전제가 붙는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나온 지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학생은 이제 마흔이 넘은 중년이 됐다. 어쩌면 더 이상 ‘인어공주’의 메인 관객이 아니라는 말이다. 새로운 ‘인어공주’를 영접할 관객들에게 과거와 비교는 “라떼는 말이야”에 불과하다. 그들 역시 자신만의 에리얼을 새겨 넣을 자격이 있다.
원작 팬이 주장하는 “#NotMyAriel”, 맞다. 30살을 더 먹은 에리얼이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새로운 에리얼을 옛 관객의 마음속, 깊은 바다 안에 가둬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인어공주’에게 ‘저 바다 밑’(Under The Sea)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건 나쁘지 않다. 다만 자신이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자 진리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이제 에리얼은 30년 전의 바다 밑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헤엄을 시작한다.
사진=월트 디즈니 코리아
권구현 기자 kkh9@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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