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감독을 지칭하는 말은 ‘B급 영화의 아이콘’이다. 국내에서는 B급 영화를 주류에서 벗어난 작품이라고 해서 폄훼하는 경향이 있지만, B급 영화야말로 특정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장르다. ‘남자사용설명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B급 영화다. 매우 독특한 색감과 연기를 갖추면서도 이야기적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신작 ‘킬링 로맨스’는 ‘남자사용설명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독창적이다. 포스터나 스틸컷만 봐도 ‘이 영화 남다르다’는 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tvN ‘나의 아저씨’ 이후 늘 깔끔하고 엘리트 같은 이미지를 가진 이선균이 예상 밖의 외형으로 그려진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것은 제작자나 배우나 감독이나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계는 그의 실험 정신을 크게 반기고 있다. 능력 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이원석 감독의 도전을 치켜세우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뻔한 작품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새로운 틀을 제시한 그를 향해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대중이 그 피와 땀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미지수다. 결국, 관객은 이 이야기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느냐 마느냐로 판단이 갈리기 때문이다.
‘킬링 로맨스’는 워낙 독창적이라 폭넓게 대중을 품기보다는 1030 연령대에 더욱 적합하다. 이 감독 역시 이른바 MZ세대의 반응을 더욱 세심하게 보고 있었다. 서사적 완성도에서 오는 의미보다는, 비록 개연성은 적더라도 예상 밖의 웃음을 더 갈망하는 대중에게 더 코드가 맞는 작품이어서다.
그런 가운데 한류타임스는 지난 13일 이원석 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원석 감독은 ‘킬링 로맨스’의 촬영기를 한 편의 ‘모험’이라고 지칭했다. 그만큼 어려우면서도 기적 같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류타임스는 독창적인 영화를 만든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 모험기를 일문일답으로 풀어봤다.
어떻게 이 영화와 만나게 된 건가.
모험처럼 시작한 것 같아요. 사실 다른 걸 준비하고 있었어요. 저는 이상한 시나리오만 들어와요. ‘뷰티인사이드’ 같은 콘셉트인데, 방구 뀌면 얼굴이 바뀌는 그런 시나리오요. 그러던 중에 김명진, 김성훈 대표가 ‘킬링 로맨스’를 줬어요. 너무 신박하더라고요. 저를 1년을 기다려줬어요. 저랑 같이해야 한다면서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다시 읽어보니까 정말 재밌더라고요.
고마움도 있었겠다. 왜 갑자기 시나리오가 재밌게 보였을까.
박정예 작가가 계속 고치기도 했죠. 그러니까 안정이 되더라고요. ‘왜 저한테 주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제 색깔을 마음대로 입히면, 좋을 것 같다고 해줬어요. 남편을 죽이는 아내 이야기인데 코미디라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했어요. ‘마누라 죽이기’나 이병헌 감독의 ‘바람바람바람’을 연구했어요.
‘바람바람바람’은 잘 만든 코미디 영화다.
그 영화도 B급 감성이 있잖아요. 그리고 바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부감이 있는 소재고요. 그래서 그 마이너스를 극복하려고 모든 코미디를 다 쏟아부어요. 쓸 수 있는 코미디 기술이 다 나와요. 그렇게 공부했죠.
첫 스타트가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다. 동화적이면서도 독특한 흐름이다.
갑자기 대화 중에 ‘만약 여기가 바다라고 상상해보세요?’라고 하면 어떤가요. 그러면 뭔가 다양한 상상이 들 것 같지 않나요? ‘만약에’라는 말이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그걸 정말 잘하는 게 디즈니 같아요. 옛날 이야기라면서 동화적으로 현실을 풀어내는 거요. 그렇게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출발점을 동화로 잡은 거예요.
동화적인 이미지로 약 20분을 깐다. 그 이후로는 꽤 매콤한 코미디가 나온다.
코미디를 1부터 10까지 단계로 치면, 10까지 올라가려면 1~3 단계의 코미디가 계속 나와야 해요. 피식피식 웃다가 결국 한 방을 터뜨리는 거죠. 10이 되기 위해서 익숙함과 공감을 배치하는 거죠. 그 사이 사이에 코미디를 넣고요.
이선균과 이하늬는 어떻게 설득했을까.
이선균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가기 전에 저를 찾았어요. 거절하려고 온 거래요. 근데 저랑 김성훈 대표랑 정신을 쏙 빼놔서 말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이하늬도 결정된 상황이 아니었는데, "이하늬는 할 거"라고 했었죠. 미국 가서 둘이 만나더니 하기로 한 거예요. 사실 ‘기생충’이 작품상 받았을 때 저희는 슬퍼했어요. ‘안 하겠구나’ 싶었죠. 시나리오 엄청 들어오는 배우인데, 아카데미까지 받았으니 시나리오가 몰려오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동화같이 풀린 거예요.
H.O.T의 ‘행복’은 어떻게 받았는지 궁금하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나온다.
‘조나단 나’(이선균 분)가 악마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 주위에 있는 악이기도 하다. ‘행복’은 알고리즘 같은 거예요. 취향을 강요하니까. 그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조나단 나가 부르는 노래는 알고리즘처럼 우리를 세뇌시키는 노래예요. 행복이 의미가 좋아서, 행복을 강요한다는 느끼을 넣었죠.
이것도 동화다. 이선균과 우연히 냉면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가 장우혁인 거예요. 이선균이랑 서로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헤어지고 ‘행복’이 노래로 나왔어요. 순간 이거다 싶었던 거죠. 이건 ‘하늘의 계시’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노래를 받았어요.
가족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사실 가장 어려운 관객이 가족이에요. 와이프는 이 영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보기로 했는데, 취소하겠다고 했어요. 면전에서 그렇게 말했어요. 딸은 재밌게 봤어요. 그러다 갑자기 싸움이 시작됐어요. 딸이 뱉어서는 안 되는 단어 ‘꼰대’를 뱉은 거죠. ‘엄마 꼰대야’라고. 그때부터 텐션이 높아졌어요. 둘이 꽤 크게 싸웠어요. 그 장면을 보면서 매우 당혹스러우면서도 ‘우리가 뭘 하긴 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실제 기자들끼리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다. 상당히 논쟁적이었다. ‘킬링 로맨스’가 화두로 올라오면 뜨거워진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을까?
시작부터 예상했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행복했어요. 제작자들이 늘 ‘더 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마음대로 했죠.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초고는 되게 현실적인 이야기였어요. 남편은 더 폭력적이었고. 묘사도 리얼했어요. 그걸 코미디로 뒤집은 거예요.
박정예 작가님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집 앞에 찾아가서 같이 작업했어요. 작가님이 입원할 정도로 열심히 썼어요. 서로 다른 성향이라 언쟁도 하면서 여기로 온 거죠. 정말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왔어요. 배우들도 정말 용감한 선택을 했어요. 촬영 하면서 ‘우리 홍보할 땐 이민가야 한다’면서 했어요.
이 영화는 정말 끝까지 간다. 기본적인 틀을 깨부수고 나간다. 다른 영화는 어딘가 색다른 척 하다가 결과적으로 뻔 한 방향으로 돌아온다. ‘킬링 로맨스’는 마지막에 더 멀리 간다.
저는 다른 영화가 왜 독특하게 가다 돌아오는지 이유를 알아요. 만드는 사람이 중간에 두려워져서예요. 이렇게는 혼자서 절대 할 수 없어요. 다 같은 배를 타야 해요. 감독도 사람이고, 책임을 본인이 다 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이 영화는 배우들부터 모든 사람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생방 촬영하듯이 찍기도 했는데 배우들이 혼신을 다했어요. 하나가 된 것 같았어요. 서로 아이디어를 마구 냈어요. 갑자기 찍기로 했던 장소가 불발되고, 최악의 상황이 많았는데, 언제나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여래’(이하늬 분)가 왜 연기를 다시 하고 싶은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특별히 연기력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연기에 대한 깊이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냥 ‘조나단 나’ 옆에서 지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동화는 ‘여래가 부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서 끝나요. 이 영화는 그 이후부터 시작이에요. 여래는 사실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범우는 순수한 친구인데, 용기도 있어요. 범우와 팬들이 여래를 응원해요. 그 응원이 자극이 돼서 여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여래이즘’을 부르는 거예요. 하지만 ‘조나단 나’의 마법의 노래를 이기기엔 역부족인 거예요. 그러다 타조가 나타나서 일을 대신 해결해주는 거죠.
타조의 존재는 정말 충격이다.
우연히 아는 동생이 하는 타조 농장에 갔는데, ‘쟤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우리 시나리오엔 참새, 사슴 다 나오고 있었어요. 그러다 타조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경제적 목적으로 인해 자연을 훼손하면서 둥지를 잃은 모습이 꼭 원주민 같았어요. 말 못하는 원주민, 억압받는 인간이라 생각했어요.
그러기엔 내용이 너무 함축적인 것 같다.
하하. 그런 면도 있죠.
‘남자사용설명서’에서 함께한 오정세가 나온다. 오정세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싹 바뀐다.
원래는 요트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어요. 거기서 남편을 죽이는 거였는데, 요트도 너무 비싸고 재미도 없었어요. 그러다 여러 아이디어를 냈고, 찜질방이 나왔어요. 뭔가 영화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러다 그 촬영장을 찾은 거죠.
하필 오정세가 그 촬영 기간에 강원도에 가족이랑 여행 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시간을 내서 하루동안 찍었어요. 공교롭게 그렇게 된 거죠. ‘남자사용설명서’의 승재 20년 뒤가 왠지 찜질방 사장 같기도 했어요. 종일 온몸에 물 다 부어주고 별 걸 다 해주고 갔어요. 고마운 사람이에요.
‘조나단 나’의 대형 그림도 ‘킬링 로맨스’의 포인트다. 이런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우린 우리만의 선이 있었어요. ‘이거 이상은 넘지 말자’가 있었죠. 하지만 ‘조나단 나’는 배우의 열정 때문에 10배 가까이 높아졌어요. 분장팀은 가슴 아파했어요. ‘나의 아저씨’ 열혈 팬이었어서.
그림은 그런 게 있어요. 내 주위엔 돈 많고 쿨한척 하지만 쪼잔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 특성이 바디 프로필 사진을 대형으로 뽑아놓고 액자로 해서 걸어놓아요. 그 사진 앞에서 대화하느 건 굉장히 묘해요. 나르스시즘 캐릭터일 것 같은데, 조나단도 그런 사람으로 여겼어요.
뭔가 고급진데, 이상하다.
우리 색깔이라고 생각해요. 미술이 후지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고급이라고 말할 수도 없죠. 시쳇말로 ‘고급진데 짜쳐’의 느낌이에요. 잘할 거면 되게 잘하면 되는데, 이 중간 어디의 이상한 느낌은 정말 어려워요. 그렇게 어렵게 만든 게 이 영화만의 오리지널한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코미디 감독으로서는 확실한 점을 찍은 것 같다.
사실 코미디를 하는 감독이 많지는 않아요. 코미디 장르만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다른 장르는 있어보이는데, 코미디는 뭔가 상 받을 때도 배제되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안 하려고 해요. 코미디 장르는 홍보할 때도 무게를 잡기도 힘들어요. 배우들이 신나서 얘기하는데, 감독이라고 무게 잡을 수도 없어요.
어떻게 회자가 되든 용기를 주는 영화였으면 해요. 제 후배가 그래도 ‘형은 횃불이 될 거다’라고 해줬어요. 이런 영화가 있어야 후배들이 길을 뚫고 나간다는 의미예요. 개인적으로 정말 고마웠어요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함상범 기자 kc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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