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AM 출신 정진운은 전천후 엔터테이너다. 그룹 출신으로 음악성은 물론 예능감도 상당히 탁월하다. 특히 M.net ‘음악의 신2’에서 보여준 능청스러운 연기는 빼어난 외형과 이질적인 포인트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됐다. 덕분에 팬덤도 세대나 성별과 무관하게 꽤 두텁다. 이러한 재능과 능력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욕먹고 싶지 않은 승부욕과 성실함이 바탕이었다.
약 10년 전부터 연기에 도전했다. 비록 많은 작품에 출연한 건 아니지만,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많은 아이돌 출신이 편견 앞에서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정진운은 그러한 허들이 없었다. 비교적 좋은 연기를 펼쳤다는 의미다.
신작 ‘리바운드’는 정진운의 재발견이라고 할 법하다. 안재홍을 제외하고 신인 배우들이 대거 나오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이 짙은 ‘규혁’ 역을 맡는다. 인상을 찌푸린 채 버럭 화를 내는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늘 분노에 휩싸여 있고 타인과 소통도 서툴지만, 농구만큼은 진심인 청춘이다. 영화 초반부터 감정을 적절히 빌드업한 후 후반부 절제하며 털어낸다. 그래서 더 진한 뭉클함이 있다. 감독과 함께 만든 캐릭터지만, 배우의 기본기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성취다.
그런 가운데 정진운이 지난 3일 한류타임스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랫동안 연예계 활동을 해온 정진운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매우 의젓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면서도, 당당했고 겸손했다. 30대답지 않은 내공이 엿보였다.
이 영화와 첫 만남은?
소속사에 대본이 들어오고 매니지먼트에서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저에게 했던 말이 “넌 어차피 할 거라서 한다고 했다”고 했다. 나중에 대본을 읽어보니, 농구 소재이기도 하지만 내용이 정말 좋아서 그렇게 말한 것 같앗다. 대본을 읽자마자 이 영화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내용이 희망차고, 재밌었다. 뭔가 불타올랐다.
장항준 감독과 만날 때 그렇게 부담을 줬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원래 첫 만남에서는 출연 결정을 갖고 얘기하는데, 제가 이 영화를 너무 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캐릭터에 대한 모든 질문을 가져갔다. 평소대로라면 두 번째나 세 번째 미팅 때 할 얘기를 처음에 다했다. 감독님이 미안해서라도 출연을 시키고 싶게 만들려고 했다. 그만큼 이 영화에 적극적이었다. 과거에 있던 먼지 같은 사실까지도 끄집어내서 어필했다.
작품이 결정되고 신발을 구하느라 그렇게 힘들었다고.
제가 연기한 ‘규혁’이가 당시 실제 신었던 신발이 한정판이다. 리셀가가 100만 원이 넘는다. 새 것을 헐게 만드는 게 아깝더라. 그래서 동네를 이동할 때마다 당근마켓을 켰다. 촬영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반포동에서 6만 원짜리를 찾았다. ‘이건 사야돼!’라는 마음으로 갔다. 매니저 형이 저 대신 신발을 받아왔는데, 파는 사람도 "이걸 왜 사냐?"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사실상 쓰레기였을 것 같은데.
그냥 쓰레기였다. 신을 수도 없었다. 밑창이랑 위랑 완전히 분리됐다. 그걸 일일이 수선을 했다. 전국대회 전까지 그걸 신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정말 고생했다. 밤새 본드로 붙이고 수선하고 그랬다. 전국대회부터는 더 격한 움직임이 있을 것 같아서 제작진이 사주셨다.
왜 그렇게 신발에 집착한 건가?
신발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게 한다. 배우가 당연히 인물의 속부터 채우고 싶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비교적 쉬운 외형부터 찾는 거다. 막상 그 신발을 보니 규혁에게 한발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역할이다. 감정신도 많고, 극 중 인물 중 레이어가 가장 깊은 인물일 수도 있다.
규혁이가 실제로도 여린 구석이 있는 친구다. 농구할 때도 거칠게 행동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곧이곧대로 표현하면 미움을 살 것 같았다. 최대한 담백하게 중간을 걷자고 생각했다.
농구는 연예계 원탑이라고 정평이 났다. 자신감이 있었을 것 같다.
농구를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 있게 연기하면 오히려 내가 생각한 연기가 안 나올 것 같았다. 왜냐면 내가 배운 농구는 엘리트 농구가 아니니까. 리스펙트를 갖고 규혁이를 따라 하려고 했다. 손가락 하나까지도 닮으려고 했다. 규혁이가 드리블할 때 새끼손가락을 피는 버릇이 있다. 본인도 몰랐던 거다. 그런 것까지도 비슷하게 하려고 했다.
스포츠 영화를 잘 만들기가 어려운데, 이번 작품은 정말 농구신이 멋지다. 어떻게 촬영한 건지 궁금하다.
저희는 합을 갖고 연습했다. 무슨 경기 몇 번 합이라고 하면 딱 주어진 대로 움직인다. 카메라를 여러 대 두고 원테이크로 찍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도 다 해야 했다. 누구 하나 쉴 수가 없었다. 3분 이상 원테이크로 찍었다. 한 번은 감독님이 컷을 안 하더라. 그래서 계속 뛰었다. 이게 몇 번 반복 되니까, 선수가 일부로 공을 내보내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컷이 되니까. 오히려 저희끼리 할 때 장면이 영화에 많이 쓰였다.
농구도 해야 하고 감정 연기도 해야 했다. 사투리도 어려웠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부담감이 작용했을 법하다.
쉽지 않았다고 해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촬영 들어갔다고 준비가 다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준비돼야 촬영이 순조로워진다. 매 작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다르지만 ‘준비된 거야’라는 마음으로 다각도로 완성을 시켰다면 그때부턴 그대로 연기를 하면 된다. 내가 부족한 게 있다면 감독님이 그때그때 얘기를 해줄 거라는 믿음도 있다.
엘리트처럼 농구 해야 하고, 규혁이처럼 감정을 넣고, 사투리는 기본으로 써야 했다. 그래도 그것보다 중요한 게 내 몸이 아프지 않은 것이었다. 아프지 않아야 연기를 잘 할 수 있으니까.
발목 수술을 한 거로 알고 있다. 힘들진 않았나.
양발 발목 수술을 했다. 뛰다 보니까 수술했던 발이 안 아플 수 없다. 촬영 후반부엔 발바닥이 아팠다. 티 내고 싶지 않아서 혼자 케어를 많이 했다. 선수들처럼 아이싱도 하고, 루틴도 잘 관리했다.
주로 이신영과 합을 맞췄다. 규혁과 기범(이신영 분)은 신경전이 있다. 처음부터 친해지긴 어려웠을 것 같다.
실제로 기범과 규혁은 슛 내기를 밤새 할 정도로 라이벌 분위기였다. 승부욕이 강했던 친구다. 신영이도 내가 불편했는지 그리 살갑게 다가와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다가온 것도 아니다. 애매했다. 단둘이 밥 먹으러 가면 조금 불편한 느낌이다. 그러다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갔다. 신영이가 부산 출신이라 득을 크게 봤다.
예능 천재 장항준 감독의 현장 장악력을 평가한다면?
기본적으로 재밌고 유쾌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한마디를 해도 재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봤으면 저렇게 사람을 끌어당길까 궁금했다. 몇 사람도 내 사람을 만들기 어려운데, 10 0명 넘는 사람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이 자체가 카리스마다. 단 한 번도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못했다. 그건 감독님 능력인 것 같다.
디렉팅은 어떻게 줄까?
배우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게, 다른 사람 눈치채지 못하게 주신다. 그런 것들이 되게 배울 게 많은 어른이라고 여겨진다. 감독님을 재밌게만 보는 게 아쉽다. 재능이 많은 분이다.
감독님 특유의 음해 개그에는 많이 적응한 것 같다.
틈만 나면 저보고 "도벽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저는 "도벽이 있다"고 답한다. 태국에서 한 달 지내다 온 거로 "태국 아내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러면 저도 그냥 "딸이 두 명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는데, 하도 많이 하니까 이제는 재홍이 형도 받아준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후반전 들어가기 전의 라커룸 시퀀스다. 상당히 매력적인 장면이다. 그게 배우에게도 꽤 많이 남을 것 같다.
촬영 할때는 다른 생각을 못 했다. 몰입해 있으니까. 그 신 찍고 나서 너무 많이 와닿았다. ‘나는 제 2의 무언가가 있는 건지’ 아니면 ‘현재 진행형인지’ 이런 질문이 든다. 숙제로 남아있다.
스스로 정진운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이런 언론 인터뷰를 할 때 ‘저는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여러 분야에 관심 있는 것에 많은 걸 하려고 한다. ‘실패를 하면 어때?’라는 생각이 있다. 남는 게 없어도 좋다는 마인드다. 지금 저는 들어가지 않고 튀어오른 공을 바라보는 시점인 것 같다. 박스 아웃 중이다. 그러면서도 ‘저 공을 또 못 잡으면 어때?’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재미로 바뀐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그 안에서 얻어갔으면 좋겠다.
박스 아웃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성공을 맛봤는데.
그건 스스로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가 있고 팀이 있었다. 큰 회사에서 앨범을 내서 인기를 얻었다. 슛은 내가 던졌지만, 골은 다른 사람이 넣어준 느낌이다. 앞으로도 온전히 스스로 다 하지는 못 하겠지만, 8~90%는 혼자 만들고 싶다. 그런 프로젝트가 있다. 14일엔 죽음을 테마로 사진전도 연다.
음악과 연기 어떤 매력의 차이가 있을까.
요즘엔 음악으로 도전하는 편이다. 작은 콘서트를 연다. 기존에 잘 없는 새로운 버전이다. 한가지 악기로만 공연을 준비한다. 기타, 바이올린, 멜로디언 등등이다. 하기 전에는 두려움도 있었는데, 하고 나면 별 게 아니다. 다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정말 못할 건 없다.
사진전도 개인전 준비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하기 전이 두려웠던 거지 하면서는 딱히 못 할 것도 없다. 연기도 비슷하다. 제가 활동을 오래했다 보니까 저를 캐릭터만으로 바라봐 주진 않을 것 같다. 그게 무섭다고 안 하는 게 진짜 바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진실한 눈으로 바라봐 주실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얘기를 들어보면 내면에 강한 남성성이 있는 것 같다. 승부욕도 있고, 도전의식도 그렇다. 어떻게 이런 남성성이 있는 것일까.
실제로 제가 지는 걸 싫어한다. 농구는 특히 그렇다. 헤어밴드 던지고 승질 부리고 그런다. 상대가 고의적인 파울을 하면 나도 더티하게 파울을 한다. 젠틀하지 않다.
제가 부유하게 살았거나 공부를 유달리 잘했던 것도 아니다. 뭔가 제가 조금은 잘하는 것으로 특출나 보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노래나 농구가 그 예다. 연기도 그렇다.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를 너무 듣고 싶지 않다. 트집잡히고 싶지 않다. 그래서 부던히 노력하는 것도 있다.
‘리바운드’가 정진운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될 것 같을까.
제 인생에 계속 숙제처럼 남아 있을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것이 ‘박스아웃’인지 ‘리바운드’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줄 것 같다. 관객들에게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다만 메시지라도 생각나길 바란다.
사진=바른손이엔엠
함상범 기자 kc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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