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는 드라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명승부”
스포츠를 향한 수많은 찬사가 있다. 인간이 육체 혹은 정신, 기술을 수학해 서로 겨루어 본다. 승패 혹은 기록으로 순위를 나누지만, 그 결과까지 도달하는데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를 서로 가늠하고 인정한다. 하여 감동을 안긴다. 성과로 돈을 받는 프로도 있지만, 순수히 대결하는 아마추어에 이를 때 스포츠 정신은 최고의 빛을 발한다.
하지만 스포츠의 스토리텔링엔 아킬레스건이 존재한다. 바로 규칙이다. 서로 같은 룰을 지킬 때, 공정한 대결이 성립한다. 이를 지켜보는 건 심판인데, 그는 신이 아니다. 그래서 오심이라는 실수가 일어난다. 지난해 고인이 된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 대표적이며, 우리 국민 역시 지난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에 도둑맞은 김연아의 금메달에 땅을 쳤었다.
아이러니다. 신이 아니기에 용납되는 심판의 실수인데, 경기장의 심판은 신 보다 우월한 힘을 갖는다. 그렇게 판정 하나가 경기를 좌우하고, 그릇된 심사가 선수의 노력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영화 ‘카운트’는 오심의 정점이었던 사건을 조망한다. 그런데 패자가 아닌 승자를 바라본다. 알고 보니 오심의 수혜자 또한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카운트’는 88 서울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박시헌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 당시 박시헌은 편파판정 시비에 시달렸다. 주최국 어드벤티지를 넘어 냉전 시대의 음모론까지 고개를 들었다.(88 올림픽의 최종 순위는 1위가 소련, 2위가 동독, 3위가 미국이었다) 자국민마저 그를 외면했다. 피땀 흘려 얻은 금메달은 그렇게 찬란한 금빛을 잃었고, 점차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무거운 소재지만 영화는 사람 냄새와 웃음으로 극을 이끈다. 당시 복싱계를 떠났지만 이제는 국가대표 감독으로 2016년 브라질 올림픽까지 참가했던 박시헌 감독이다. 나름의 치유이자 보상을 받았기에, 그리고 35년의 세월 속에 과거의 아픔이 풍화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허나 깊은 상처는 흉터를 남기는 법이다. 그럼에도 ‘카운트’가 따스한 이유는 박시헌 선수가 품은 심성의 온도이자 마녀사냥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미안한 마음일 터다.
박시헌 선수의 사정에 다가서는 방식은 정공법이다. 실화의 소재에 창작의 에피소드를 넣었다. 하지만 세심한 한 수가 있으니, 캐릭터 설정을 통한 아이러니의 미학이다. 88올림픽 당시 ‘시헌’(진선규 분)은 편파판정으로 승리했다. 그런데도 가장 사랑했던 복싱을 잃었다. 고등학생 ‘윤우’는 편파판정으로 패배했다. 그래서 가장 사랑했던 복싱을 포기했다. “그래도 패자보다는 낫잖아요”라는 윤우의 말은 관객의 가슴을 후벼 판다. 아니다. 편파판정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법이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공정의 룰에 대한 이야기다. 하여 영화는 커다란 굴곡 없이 무리 없는 서사를 전개한다. 전직 금메달리스트가 유망주와 함께 운동부를 일으키는 하이틴 스토리가 다소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화이기에 자극을 뺄 필요가 있었다. 국민이 버렸음에도 다시 한번 국가대표 감독으로 나라의 부름을 받았던 박시헌 감독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긴장감은 복싱신으로 조율한다. 이 또한 스포츠 장르 영화가 남발하는 연출 기법들을 최대한 배제했다. 덕분에 배우들은 실제 타격 액션을 펼쳤고, 그 노력은 링 위에 고스란히 땀이 되어 튀어 오른다. 장르적으로 허용되는 코미디 요소 역시 적하게 배치, 진중한 소재를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영화로 탈바꿈했다.
진선규는 어느 구석 하나 모나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생애 첫 단독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기 충분하다. 그리고 성유빈이다. 감정의 굴곡이 가장 오르내릴 캐릭터를 특유의 목소리 톤으로 잘 갈무리했다. 장동주, 고규필 등 다른 조연 캐릭터들도 자신들의 선을 잘 지킨다. 덕분에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관객은 ‘박시헌’의 서사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만다.
영화 ‘카운트’의 시작은 오는 22일이다. 경기 관람은 12세 이상 가능하고, 경기 시간은 총 109분이다.
사진=CJ ENM
권구현 기자 kkh9@hanryutimes.com
Copyright ⓒ 한류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