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뷰] '다음 소희'의 재림을 막을 수 없는, 현 세대의 '모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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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뷰] '다음 소희'의 재림을 막을 수 없는, 현 세대의 '모던 타임즈'

한류타임즈 2023-02-06 13:47: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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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김시은 분)은 19살 고등학생이다. 소희는 춤을 좋아한다. 함께 춤을 추는 크루에서는 에이스라며 칭찬받는다. 원하는 안무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한다. 소희는 불의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안다. 베스트 프랜드와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미묘하게 좋은 감정을 나누는 학교 선배 오빠가 있다. 가족들한테도 사랑받는 딸이다.

지금까지는 소희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다. 하지만 사회 혹은 현실이라는 기준 혹은 색안경을 끼면 소희는 다른 사람이 된다. 찰리 채플린이 흑백 영화 '모던 타임즈'(1937)로 근대 산업화 전체를 풍자했다면, 정주리 감독은 '다음 소희'를 통해 무관심에 썩어 버린 산업 사회의 한 축을 바라본다. 소희가 어른들이 '옳다' 말하는 시스템에 가스라이팅 당하 듯, 영화 역시 컬러이지만 잿빛 같은 무채색처럼 스크린을 채워간다.   


소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간 취업준비생이다. 대학 진학보다 취업이 중요했던 했던 마이스터고 출신이다. 소희는 신입 사원이다. 대기업 하청의 하청의 하청 즈음의 콜센터 직원이다. 소희는 인터넷 해지 업무를 안내하는 상담원이다. 인터넷 해지를 방어하고, 추가 상품 가입을 안내하며, 새로운 약정을 제시하는 영업 업무를 한다.

소희는 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진상 고객 앞에선 자신의 사고와 자존심을 포기한다. 업무에 치이다 보니 친구와 만날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 춤 연습은 진즉 그만 뒀다. 썸남은 실습 현장 적응에 실패한 것 같아 실망이다. 나 역시 실습을 그만두고 싶지만 학교의 취업률 압박이 녹록치 않다.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도 차마 입을 뗄 수가 없다. 그만큼 나에 대한 실망은 죽음보다 더 무섭다.


영화는 크게 1,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소희의 이야기, 2부는 그런 소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유진’(배두나 분)의 야이기다. 흔한 형식은 아니지만 오롯하게 소희의 케이스를 살펴보고, 소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의 시스템을 조망한다. 그래서 영화 제목은 ‘다음 소희’다. 소희를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고, “이제 다음 소희는 없을까”라는 주장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는 이 현실에 개탄한다.

같은 사건을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조사했었다. 그런 측면에서 ‘다음 소희’의 접근법은 영화라는 미디어가 가진 특성을 잘 살려냈다. 추적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장르적 차이가 분명하다. 전자의 형식이 우리의 분노를 일으켰다면, 후자는 슬픔을 곱씹으며 앞으로의 현실을 걱정하게 한다. 다만 무서운 것은 고쳐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 구조와 인식이다. 하여 ‘다음 소희’의 진짜 장르는 ‘공포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정주리 감독의 섬세한 터치가 이곳 저곳에 묻어 있다. 가타부타 여러 설명을 걷어냈다. 필요한만큼만 보여줄 뿐이다. 조금의 모자람도 넘쳐남도 없는 전개다. 1, 2부 구성을 살려 서사만으로 관객을 소희에게 인도한다. 그 어떤 가치관이나 메시지의 강요도 없다. 그저 관객들은 소희를 바라보고, 유진과 동행할 뿐이다. 그리고 극장문을 나설 때 느끼는 감정과 사고, 그것이 바로 ‘다음 소희’가 남기는 의미다.

신예 김시은이 영화의 절반인 1부를 이끈다. 찬란했던 김시은은 소희의 영혼이 점차 무채색으로, 회색을 넘어 하얗게 변색되는 과정을 시나브로 쌓아간다. 감정의 과잉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소희의 색을 완성하는데 일조한다. 연기 경력이 많은 배우들도 유지하기 힘든 절제의 선을 신인 배우가 지켜가는 거 마냥 대견하다.


2부를 이끄는 배두나는 배테랑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정 감독이 ‘도희야’ 이후 다시 한번 배두나를 선택한 이유다. 소희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엔 수많은 감정, 분노, 슬픔, 회환, 절망 등이 뭉쳐있다. 강렬한 붉은 화염이다가도 칡흑 같은 어둠으로 마음 한구석이 물들기 마련이다. 허나 배두나는 이를 철저히 경계한다. 배두나는 감정의 도화지를 흰색도 아닌 무색의 공기처럼 비워 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허탈함, 그 공허의 공간을 채우는 건 바로 관객의 몫으로 양보하는 대단한 연기다.

‘다음 소희’는 제6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됐고,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됐다. 소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닌, 전 세계에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하여 ‘다음 소희’라는 제목이 더 무섭다. 어쩌면 끊이지 않을 악습의 굴레다. 우리는 다시 나타날 다음 소희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그저 지금처럼 ‘힘내라’는 응원이 전부가 되진 않을지, 많은 생각을 남기는 영화 ‘다음 소희’다.

영화 ‘다음 소희’는 오는 8일 개봉한다. 138분. 15세 관람가.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권구현 기자 kkh9@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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