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와의 첫 작품 '도희야'에 이어 두 번째 작품 '다음 소희'로 지난해 5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며 상영 후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충격적이면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이끌어낸 정주리 감독을 만났다.
감정노동을 하는 콜센터 직원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소희'의 모습을 기존의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당차고 야무진 캐릭터로 설정했던 이유에 대해 정주리 감독은 "'소희'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실제 사건을 취재한 기사들에서 한결같이 했던 "그럴 애가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다들 절대로 자살을 할 성격이 아니라며 피해자를 묘사했다. 그게 과연 뭘까 궁금했다. 절대 안 그럴 친구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어 내가 그리고 싶은 인물을 만들게 되었다. 지극히 평범한 또래 아이로, 개성 있고 당차고 언제든지 자기 할 말은 할 것 같은 아이로 그리고 싶었고, 그런 아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그려내려 했었다."라며 '다음 소희'에서 '소희'가 어떤 인물로 보이기 원했는지를 설명했다.
정주리 감독의 설명과 딱 떨어지는 '소희'를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김시은 배우가 연기했다. 김시은 배우가 '소희' 역할의 첫 오디션 대상자였고, 리딩이나 연기를 보여주지도 않고 대화만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에 정주리 감독은 웃으며 "전혀 모르는 배우였는데, 저와 이야기하면서 참 특별한 말을 하길래 캐스팅하게 되었다"라며 기적 같은 캐스팅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이 친구를 검색하니 '보니하니'의 진행하는 영상이 나오더라. 기본적으로 발랄하고 생기 있는 친구라 생각해서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데 김시은이 "소희가 꼭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더라. 그 말이 나에게 참 특별했다. 첫 영화 '도희야'의 시나리오를 배두나에게 보냈을 때 그가 "이 영화는 꼭 세상에 나와야 하고 극장에서 공개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힘을 보태고 싶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의 기시감이 들었고, 내가 얼마나 이 역할을 잘 할 수 있는지, 제가 바로 그 소희예요라고 하는 말보다 더 객관적으로 이 작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뭔가 하고 싶다는 비범함이 느껴져서 편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더라. 그때 저도 모르게 '다음에 만나면 이런 걸 해보자'라고 이야기했고 제 머릿속에 그렸던 소희라는 인물을 김시은이라는 배우가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첫 만남에서 대화만 나누고 캐스팅했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정주리 감독은 "그렇다고 모든 배우들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캐스팅하지 않았다. 김시은 배우가 아주 이례적인 경우이고 다른 배우들은 평소 팜께 작업하고 싶었던 배우들 중에서 한 분 한 분 고심해서 캐스팅했다. 조연들까지도 다 일일이 만나 리딩을 한 뒤 캐스팅을 했다. 그래서 크건 작건 모든 역할에 적역을 캐스팅했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느낀다."라며 영화에 출연한 모든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를 자랑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정주리 감독의 작품에 모두 연달아 형사로 출연하며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배두나에 대해 이야기 안 할 수 없었다. 정주리 감독은 "페르소나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정말 가장 강력한 동지였다. 첫 영화 때는 더 큰 도움을 주었고 두 번째 작품에서는 배두나라는 존재가 있어서 '유진'을 쓸 수 있었다."라며 배두나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이야기를 쓸 때 당연히 배두나가 할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서 어떻게 봐줄지 몰랐다. 하지만 배두나와 연기할 모습이 그려져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고, 1,2부가 나뉘는 위험한 구성을 시도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시나리오를 보냈더니 정말 제가 쓴 대로 영화를 봐줬고 어떤 영화로 만들고 싶은지를 제 마음에 왔다 간 것처럼 이해하더라."라며 왜 배두나여야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정주리 감독은 배두나의 매력으로 "시나리오를 너무 잘 본다. 저는 시나리오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일반적인 다른 시나리오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오독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배두나는 제가 쓴 대로 영화를 상상하고 정확하게 봐주더라. 지문에 명시적으로 쓰지 않고 분위기나 여백으로 남겨 놓은 것도 정확하게 캐치해서 나를 너무 신나게 한다. 또 현장에서 그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을 다 배려하고 마음을 쓴다는 걸 모두가 알게 한다. 참 좋은 에너지를 현장에서 나누는 배우다."라고 꼽았다.
극 중에서 김시은과 배두나는 힙합 춤을 추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다. 그들 둘에게 공통의 취미로 춤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정주리 감독은 "그 당시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굉장히 인기였고 거기서 여자 댄서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저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해줬다. 많은 춤들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 힙합 장르의 춤이 좋더라. 화난 사람들 같기도 하고 아름답기보다 할 말이 많은데 말 대신 몸으로 표현하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힙합 댄스를 추게 되었다. 영화 속 장면의 레퍼런스로 담은 것도 '스 우파' 댄스팀의 것이었는데 그대로 쓸 수 없어서 안무를 조금 수정했다."라며 개인적인 취향과 이유로 힙합을 선택했음을 밝혔다.
배두나가 영화제에 영화 출품을 강력하게 독려했었다는 것에 대해 정주리 감독은 "영화 촬영을 2월 28일까지 했고, 배두나는 3월 3일에 다른 작품 촬영이 있어서 바쁘게 가버렸다. 배두나는 이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객을 만나는 게 가장 효과적일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배우였다. 또 그 생각이 맞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화제에 출품하라는 이야기 들었는데 완성하는 입장에서는 되게 부담스러웠다. 시간도 촉박했고 출품한다고 받아들여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스태프와 배우 모두가 온 마음으로 제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에 힘을 받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라며 촬영이 끝나고 긴박하게 편집해 칸 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출품한 작품은 역시나 세계적으로 많은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샀다. 정주리 감독은 "한참 시나리오 작업을 준비할 때 봤던 책이 있다. 프레시안의 기자가 이 사건을 최초 보도했는데 이 분이 현장실습 노동자를 꾸준히 취재하고 그걸 바탕으로 쓴 책이 있었다. 그 책에서 콜 센터에 가면 현황판이 있고, 학교에 가도 현황판이 있고 교육청에 가도 그 비슷한 현황판이 있다는 걸 봤다. 그게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그 장면이 영화적으로 크게 다가왔다. 함축적으로 많은 걸 제시할 수 있겠다 싶어서 영화 곳곳에 차트와 현황판을 배치해 관객들이 같이 느껴주길 바랐다."라며 그 어떤 상황이나 대사보다 더 이미지적으로 강렬했던 '차트'에 담은 의미를 설명했다.
정주리 감독의 작품에는 형사들이 등장한다. 이번 '다음 소희'에서도 작품을 취재했던 기자나 관련 이슈의 문제를 계속해서 언급하는 노동계 인물을 등장시킬 수 있었겠지만 '형사'를 등장시킨 이유가 따로 있었을까? 정주리 감독은 "친한 친구가 경찰이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바로 파출소장으로 임관해 일하다가 지금은 경찰서에서 경감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종의 사무직이다. 제 친구를 통해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게 있어서 두 작품에서 경찰을 만들고 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며 "이번 영화에서는 사건이 발생하고 바로 현장에 와야만 하는 직업, 그리고 한편으로 공직에 있는 인물, 사건이 발생하면서 바로 수사를 할 수 있는 직업으로 경찰이 제일 적합해서 '유진'을 형사로 만들었다."라며 캐릭터 형성의 이유를 밝혔다.
영화 속에는 여러 차례 '사무직 여직원'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심지어 댄스 동호회에 가서도 배두나가 자신이 형사라고 밝히며 "사무직 여직원"에 가깝다는 말을 한다. 정주리 감독은 "저의 사심을 많이 담아낸 대사다. 욱하는 개인적인 성격이 '소희'와 '유진'이 굉장히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유진'의 과거에 '소희'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분명히 느꼈을 거라 생각하고 1,2부를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며 "'유진'은 저를 닮았다기보다는 꾸준히 이 문제를 취재하고 문제를 제기한 기자, 지금도 여전히 지역에서 활동하며 목소리를 내는 노동계의 분들이 영감을 줘서 만든 인물이다."라며 실제로 이 일을 위해 아직까지 애쓰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 '다음 소희'는 2월 8일 개봉이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트윈플러스파트너스㈜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등을 금합니다.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